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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블 후일담 창작 단편 11. 순수함은 굶주림보다 강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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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블 후일담 창작 단편 11. 순수함은 굶주림보다 강하다

히아신스v 2024. 1. 20. 13:32

이번 팬픽은 가장 쿄스케가 출장으로 한 달간 집을 비운 사이 있었던 일들 중 하나를 다루게 됩니다. 시점은 변경 없이 아야세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원작과 비교해 다른 설정이 나오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팬픽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재밌게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쌀쌀한 바람이 살 속을 파고들어 뼛속을 관통하는 겨울의 아침.

우리 가족은 텔레비전을 통해 아침 교양프로그램을 보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빠, ~ 하세요.”

~~”

 

치토세가 옆자리에 앉아 식사하고 있는 오빠에게 생선살을 권했다.

평소엔 이런 거 안 하던 애였는데.

지난번에 겨울방학 숙제를 모두 끝낸 이후 오빠에게 하는 애정표현이 두 배는 늘어난 것 같다.

오빠는 치토세의 젓가락에 있는 생선살을 재빠르게 물어 입 속으로 넣었다.

 

맛있으세요?”

그럼, 물론이지.”

얼마만큼요?”

하늘만큼 땅만큼.”

 

아빠한테 하는 애정표현의 반만이라도 엄마한테 좀 해주면 안 되니?

치토세는 언제나 오빠가 우선이다.

치토세가 오빠한테 하는 애정표현을 잠자코 보고 있으면 오빠와 연애할 때의 내가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좀 섭섭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만 소외당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하여튼 그렇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던 그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침 7시 뉴스의 우에다 히로입니다.”

 

때마침 아침 7시가 되어 뉴스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앵커의 표정이 많이 일그러져있었다.

물론 평소에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뉴스를 진행하긴 하지만, 이번엔 어쩐지 평소보다 더 했다.

 

어제 새벽 3시 경, 텐노우지 공원 동물원에서 수컷 표범 한 마리가 우리에서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여론은 동물학대를 의심하고 정확한 사건경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과연 이 표범이 동물원을 탈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야마다 리포터가 보도해드립니다.”

 

스튜디오의 앵커를 비치고 있던 화면이 동물원에 나가 있는 리포터에게 옮겨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온 세상을 삼킨 새벽. 이 날 텐노우지 공원 동물원의 표범 우리에서 건장한 수컷 표범 한 마리가 탈출하는 황당무계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동물보호단체와 여러 언론에서는 동물학대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동물원 측에서는 아직 동물학대 의혹에 대한 소견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경찰에선 총력을 기울여 표범의 위치를 수색하고 있지만, 표범의 정확한 위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표범이 탈출했다는 우리가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어 텔레비전에 비춰졌다.

표범 정도의 동물이 탈출했다면 분명 우리 어딘가가 파손되어 있어야 할 텐데, 우리는 파손된 부분 하나 없이 의외로 멀쩡해보였다.

이렇듯 외관으로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어디로 탈출한 걸까?

 

표범이 우리에서 탈출했다고? 참 별꼴이네.”

그러게 말이에요.”

 

표범 우리를 비추던 카메라의 초점이 다시 리포터에게로 옮겨졌다.

 

우리를 탈출한 표범은 수컷이며, 165cm의 몸길이와 90kg의 체중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먼 곳까지 가진 못한 것으로 보이나, 인명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이 표범을 목격하는 즉시 근처 경찰서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야마다 리포터, 사자나 호랑이, 표범 같은 맹수와 마주쳤을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하나요?”

, 이번 사건처럼 표범과 같은 맹수와 마주쳤을 경우에는 먼저 평정심을 유지하고 맹수에게 등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입은 옷을 최대한 펼쳐 몸이 커보이게 해야 합니다.”

 

방송에서는 혹여나 탈출한 맹수와 마주쳤을 때의 대비책을 시청자들에게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때. 치토세가 한참 뉴스를 보다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치토세?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치토세는 2층으로 올라간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곧이어 치토세는 내려오자마자 텔레비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치토세, 텔레비전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면 눈 나빠져.”

안 돼요. 언제 어디서나 처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려면 리포터 아저씨가 해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해야 해요.”

?”

 

텔레비전 앞에 가까이 앉은 치토세를 유심히 지켜보니, 작은 메모장과 연필을 손에 쥐고 있었다.

설마, 리포터가 얘기하는 내용 하나하나를 다 필기라도 하려는 건가?

 

세상일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모른다고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무슨 일이 벌어지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대비를 해두는 게 좋다고도 하셨고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치토세는 리포터가 얘기하는 내용들을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배운 것을 바로 실천에 옮기다니. 내 딸이지만 정말 어른스럽고 기특하다.

 

이야, 역시 치토세는 꼼꼼하구나?”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치토세를 보고 오빠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럼요. 제가 누구에요? 아빠 딸이잖아요. 표범이 와도 사자가 와도 아빠는 제가 지킬 거예요.”

그 말은 오히려 아빠가 해야 하는 것 같은데? , 지금 몇 시야?”

“7시 반이에요. 지각 안하려면 서둘러야죠.”

그래. 그럼 다녀올게!”

잘 다녀와요.”

아빠, 잘 다녀오세요!”

 

오빠는 나와 치토세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문을 넘어 일터로 향했다.

치토세는 오빠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아 뉴스를 시청했다.

그런데, 볼 거면 좀 떨어져서 보지. 그러다 좋은 눈 다 나빠지겠다.

 

그렇게 가까이서 보면 눈 나빠진대도?”

그 표범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알아놓지 않으면 위험해요.”

텐노우지 동물원은 관서지방에 있는 동물원인데 그 표범이 여기까지 무슨 수로 온다고?”

 

치토세가 이렇게 뭔가에 열중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만...

표범이 탈출한 텐노우지 동물원이 있는 오사카 시와 우리 가족이 사는 치바 현은 우리나라 본토 중앙을 기준으로 서로 정 반대방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표범이 중간에 붙잡히지 않고 이곳까지 도망쳐 올 확률은 0%에 가깝건만, 괜한데 열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별 일이야 있겠어?

 

 

겨울이긴 하지만 일기예보에 따르면 낮 동안에는 따스한 햇볕이 비춰질 예정이라고 하니 이 틈을 이용해서 빨래나 하자.

때마침 치토세도 안 나가고 집 안에 있겠다, 둘이 같이 해볼까?

치토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치토세, 엄마가 지금 빨래하려고 하는데 할 일 없으면 도와줄 수 있니?”

, 알았어요!”

 

치토세는 내 부탁을 흔쾌히 승낙하고 텔레비전을 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부터 빨면 돼요?”

이불부터 빨자. 요즘 날씨가 추워서 제대로 못했거든.”

.”

 

때마침 일기예보대로 햇볕도 따듯하게 잘 비춰지겠다, 이 정도면 바깥에서 빨래해도 되겠지.

 

엄마는 방에서 이불 갖고 나올 테니까 너는 욕실에 가서 큰 대야를 찾아봐.”

.”

 

내 말을 듣자마자 치토세는 대야를 찾으러 욕실로 갔고, 나는 이불들을 가지러 2층으로 올라갔다.

치토세의 이불은, 주인이 평소에도 잠꼬대 없이 얌전히 잔다는 걸 증명하듯 빨래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반면 나와 오빠가 쓰는 이불은 양쪽 다 잠꼬대가 심해서 그런 지 들어서 털기만 해도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나도 잠꼬대는 심하지만, 오빠도 만만치는 않네.”

 

치토세가 이런 부분은 나와 오빠를 안 닮아서 천만다행이다.

 

엄마! 대야 찾았어요!”

 

아래층에서 치토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그거 갖고 정원에 나가 있어! 엄마도 곧 이불 갖고 나갈게!”

!”

 

나는 안방과 치토세 방의 이불들을 위아래로 겹쳐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문을 넘어 정원으로 나가보니 치토세가 대야에 물을 받고 있었다.

대야 옆엔 세제와 빨래바구니도 놓여있었다.

세제와 바구니를 챙겨놓으란 얘기는 안 했는데. 하여튼 준비성 철저한 건 알아줘야 한다.

 

역시 누가 치토세 아니랄까봐 미리 다 준비해놨구나?”

그럼요. 뭐든지 미리미리 준비해놓으면 편하니까요.”

그래, 그래야 우리 공주님이지.”

 

곧이어 물이 다 차자 나는 대야에 세제를 풀고 안방 이불을 담갔다.

 

이불은 손으로 빨기엔 너무 크니까 이렇게 발로 빨래하는 거야.”

 

나는 대야에 담가져 있는 이불을 두 발로 밟기 시작했다.

곧이어 치토세도 나를 따라 이불을 밟았다.

 

처음 하는데도 꽤 잘하네?”

물론이죠. 저는 뭐든 지 잘해요.”

 

치토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 맡긴 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는,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러움과 성숙함을 보여 왔다.

게다가 어떤 일을 시켜도 다 잘해내기까지 하니, 잘하는 것 찾기보다 못하는 것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이쯤 되면 얘가 정말 나랑 오빠 딸이 맞나 의심이 가기도 한다.

 

이만큼 밟았으면 됐다. 이제 이불을 양쪽에서 잡고 꽉 짜는 거야, 알았지?”

.”

그럼 한다. 하나, , !!”

 

나와 치토세는 비눗물에 푹 담가져 있는 이불을 꺼내 양족에서 붙잡은 뒤 꽈배기처럼 돌리며 물을 짜냈다.

힘의 영향을 받아 이불에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폭포수를 보는 것 같았다.

곧이어 다른 이불과 옷가지들도 어느 정도 빨래를 끝냈다.

 

이제 발코니에 가서 널자. 이불은 네가 들기엔 많이 무거우니까 넌 옷가지 들고 오렴.”

.”

 

이전의 치토세였으면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라면서 나 대신 이불을 들고 올라가려고 억지를 부렸을 텐데.

안방 이불에 한 번 깔려본 이후로 몸에 맞지 않는 일은 되도록 피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나는 곧 이불들을 보기 좋게 갠 다음 발코니로 향했다.

치토세도 옷가지들을 넣은 빨래바구니를 든 채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나를 따랐다.

 

일기예보대로 햇볕이 발코니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물론 겨울이기 때문에 찬바람이 조금씩 불기는 했지만, 햇볕 덕분에 그렇게 춥다고 느낄 만큼 차갑지도 않았다.

빨래가 마르려면 따스한 햇볕도 필요하지만, 적당히 불어주는 바람도 없어서는 안 된다.

모든 기후조건과 환경이 완벽한 이때만큼 밀린 빨래하기 적합한 때는 없겠지.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친구들이랑 안 놀고 집에 있니?”

그러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다 가족들이랑 놀러가고 집에 없더라고요.”

그래? 하긴, 방학이니까.”

 

자기 딴엔 나나 오빠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겉으로 표현을 안 하고 있겠지만, 치토세는 분명 외로울 거다.

내가 치토세만할 때도 이런 일이 잦았다. 친구들은 방학 때만 되면 가족들과 놀러가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고, 우리 부모님도 각자 일이 바쁘셔서 좀처럼 집에 계실 시간이 없었다.

그 덕분에 나는 그 많은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서 외롭게 보내야만 했다.

나는 방학이 정말 싫었다.

 

그래도 엄마아빠가 계시니까 괜찮아요.”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치토세의 표정은 썩 밝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외유내강(外柔內剛)적인 성격은 딱 오빠 판박이다.

 

엄마아빠도 네가 옆에 없으면 많이 외로울 거야. 나중에 네가 커서 결혼하거나 하면 더 그렇겠지.”

아이 참, 엄마. 저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요. 엄마아빠랑 쭈욱~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예요.”

어머, 그래? 그럼 이반이랑 결혼 안 할 거야?”

아앗! , 그건...”

 

내가 은근슬쩍 미래를 약속하고 헤어진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자 치토세는 당황한 나머지 얼굴에 홍조를 잔뜩 띄웠다.

어려도 여자는 여자지.

 

이반이 그 얘기를 들으면 엄청 실망하겠네? 걘 너랑 결혼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텐데.”

, 엄마! 쑥스러워요! 그만하세요!”

어머, 우리 공주님 삐쳤어요? 엄마가 잘못했어요.”

! 몰라요!”

 

치토세는 미간을 찌푸리고 양쪽 뺨을 부풀렸다.

어쩜, 삐친 모습도 이렇게 귀여울까.

 

이제 그만 화 풀고 빨래나 마저 너세요, 공주마마.”

엄마가 안 그러셔도 그럴 거예요!”

 

치토세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바구니 안에 있는 빨래들을 탈탈 털며 빨래 줄에 차례차례 널었다.

감정상태가 어떻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해내니, 정말 치토세는 삐쳐도 기특한 아이다.

나와 치토세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빨래를 널고 있던 바로 그때.

 

투툭!

 

? 무슨 소리지? 뭔가 풀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선 마땅히 식물이나 애완동물 같은 걸 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집안에서 들려온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건너편 집에 있는 나무에서?

 

방금... 뭐였지? 새인가?”

엄마, 왜 그러세요? 저 나무 위에 뭐가 있어요?”

아니. 엄마가 잘못 봤나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 그 마을 안에 있는 일반 가정집에 심어져 있는 나무 위에 있을만한 건 기껏해야 고양이나 새 정도. 하지만 새는 나무 위에서 걷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기각.

온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제 집처럼 활보하고 다니는 도둑고양이라면 가능성이 충분하다.

개는 나무 위에 잘 올라가지 못하니 제쳐두고.

별 일 아닌 일로 이렇게 골똘히 생각하다니, 신경이 너무 곤두섰나보다.

 

 

땅거미를 만들어내던 황혼이 모습을 감추고 온 동네에 어둠이 깔리며 저녁이 되었다.

나는 하루 내내 일하느라 기운이 빠졌을 오빠를 위해 연애할 때 자주 만들어줬던 요리들을 만들며 저녁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반면 치토세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현관을 주시하고 있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건 어려운 일인데, 치토세는 참 용하다.

 

스타더스트 위치 메루루! 시작한다고!”

시작한다고!”

 

빨래를 다 끝낼 때까지만 해도 조금 삐쳐있던 치토세는 메루루가 시작되자마자 언제 삐쳤냐는 듯, 원래의 활기찬 미소를 되찾았다.

역시, 아무리 용하더라도 어린애는 어린애지.

 

운석이 날아와도 반짝! 거대한 파워로 반짝!”

 

이 부분은 키리노를 닮은 듯, 치토세는 제자리에서 일어나 메루루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율동까지 했다.

이 모습을 혹여나 키리노가 본다면 지난 번 학부모참관수업 때 가져왔던 250만 엔짜리 비디오카메라보다 더 비싼 걸 들고 와서 온 동네방네 생중계를 할지도 모른다.

분명 키리노라면 그럴 거다.

물론 그런 키리노의 그런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치토세가 귀여우니까.

치토세는 주제가가 끝나자마자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에 정자세로 앉아 메루루 시청에 전념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목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현관으로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치토세는 텔레비전을 끄고 현관으로 냅다 달려갔다.

 

아빠, 잘 다녀오셨어요?”

 

치토세는 오빠가 보이자마자 품을 향해 높이 뛰었다.

이에 오빠는 기다렸다는 듯 치토세를 받아 안았다.

 

치토세도 오늘 하루 잘 보냈니?”

물론이죠! 오늘도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빠.”

 

오빠랑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치토세의 표정은 말 그대로 태양처럼 밝았다.

치토세는 나랑 있을 땐 평생 안 보여주는 해맑은 미소를 오빠 앞에선 유감없이 보여준다.

누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면 깊게 고민할 것도 없이 아빠가 좋다고 하겠지.

가끔씩, 아주 약간은 이런 치토세가 못마땅할 때도 있긴 하다.

 

왔어요? 식사는 아직 준비 중이니까 먼저 세면부터 하세요.”

알았어.”

 

오빠는 치토세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2층으로 올라갔다.

 

오빠가 세면을 마치고 식탁 앞에 앉자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저기 말이야. 아야세.”

 

오빠가 한참 식사하던 도중 젓가락을 놓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

실은 말이지.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돼서 오는 도중에도 얘기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방출장이 결정됐거든.”

? 지방출장? 얼마나요?”

 

별 일이다. 웬만해서는 출장을 잘 안 가던 오빠가 이번엔 어쩐 일일까?

 

오늘 뜬금없이 결정된 거라 지금도 어안이 벙벙해. ... 한 달 정도는 집을 비워야 할 거야.”

뭐 어쩌겠어요. 회사에서 결정한 건데 따라야지 별 수 있나요?”

그래도 말이야. 가장도 없이 여자 둘만 남겨놓고 혼자 타지로 가기가 좀 그래서...”

괜찮아요. 한 달 정도는 거뜬히 기다릴 수 있으니까 오빤 아무 걱정 말고 일에 집중하세요.”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좀 안심이 되긴 하네. 알았어.”

 

오빠는 점잖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아빠. 지방출장이 뭐예요?”

 

나와 오빠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치토세가 오빠에게 질문했다.

오빠는 질문을 듣자마자 얼굴표정을 약간 일그러뜨리며 당황스러움을 표현했다.

 

? 지방출장이 뭐냐고? 글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아빠가 다른 동네에 일하러 가는 거라고나 할까?”

 

오빠답지 않게 말을 더듬고 참 별 일이다.

하긴, 어린 치토세가 알아듣게 설명하려면 힘들 텐데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쉽게 얘기하면 아빠는 내일부터 한 달 정도 집에 못 온다는 말이야.”

? 왜요?”

그러니까... 일이 많아서 당분간 집에 못 온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래. 치토세는 아빠가 없어도 집 잘 지킬 수 있지?”

그거야 당연하죠! 전 뭐든지 잘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래, 걱정 안 할게. 한 달 동안 엄마 말씀 잘 듣고 잘 있어야 한다?”

!”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져있던 오빠의 얼굴표정은 치토세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겨우 펴졌다.

 

, 그렇지. 지금 몇 시야?”

“8시인데, 왜요?”

내일 일찍 못 일어나면 열차 시간에 늦으니까 그래. 나 먼저 들어가서 잘게. 치토세, 내일은 아빠 안 깨워도 되니까 푹 자렴. 알았지?”

 

오빠는 남은 밥을 서둘러 비운 뒤 식기들을 싱크대에 넣어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오빠가 혹여나 서둘러 나가느라고 아침밥 거르면 안 되니 나도 일찍 자야겠다.

 

엄마.”

 

식기들을 치우고 2층으로 올라가려던 나를 치토세가 불러 세웠다.

 

? ?”

“...길어요?”

? 뭐라고?”

한 달은 얼마나 길어요?”

 

한 달은 얼마나 기냐는 질문에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치토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질문을 하는 치토세의 표정은 평소 보여주던 활기차고 해맑은 표정과 달리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파더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오빠를 잘 따르던 치토세한테, 오빠와 한 달 간 얼굴도 못보고 헤어지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

겉으로는 오빠한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아무 문제없는 척 했겠지만, 결국 외롭고 쓸쓸해지는 마음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뭐라고 얘기 해줘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한 달은... 치토세가 길다고 생각하면 길게 느껴질 거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게 느껴질 거야.”

“...그렇구나.”

아빠랑 헤어지고 싶지 않은 네 마음을 엄마가 왜 모르겠니. 엄마도 아빠랑 헤어지기 싫어. 아빠를 사랑하니까 쭉 같이 살고 싶어서 결혼했는걸. 하지만, 살다보면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때도 많아. 아빠는 엄마랑 너를 위해서 먼 곳까지 일하러 가시는 거야.”

 

그러고 보니, 치토세가 오빠와 멀리 떨어져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달간의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처음이라서 실감이 안 가는 걸까?

하긴, 나도 어렸을 때 이런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닌 척 할 처지는 못 되지만.

치토세의 양쪽 눈썹은 기운이 빠졌다는 걸 증명하듯 축 쳐져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앞으로도 또 있을 터.

겨우 이런 일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힘들다.

 

우리 공주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마음이 약했었지? 치토세의 이런 모습을 보면 아빠랑 남자친구가 실망할 텐데?”

 

나는 푹 꺾인 치토세의 기운을 북돋아주고자 일부러 큰 목소리로 자극 섞인 말을 했다.

 

, 아니에요! 제가 누구에요? 엄마 딸이잖아요! 전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아요!”

 

치토세는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땐 어리광 좀 부려도 되건만, 치토세가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나저나 치토세의 입에서 엄마 딸이란 말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항상 제가 누구에요, 하면 아빠 딸이잖아요. 이러던 애였는데.

 

물론이지. 치토세는 엄마 딸이야.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믿어. 하지만, 이럴 땐 네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돼. 어린 애들은 어른들처럼 굳이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숨기려 할 필요 없어. 어쨌든, 한 달은 네가 메루루를 8번 보면 다 지나갈 거야.”

? 메루루를 8번 보면요?”

그래. 메루루는 일주일에 두 번 방송하잖아. 일주일에 두 번을 한 번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네 번만 숫자를 세어보렴. 그럼 아빠가 돌아오실 거야.”

 

기운이 쭉 빠져있던 치토세의 얼굴표정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빠 돌아오시는 날에 엄마랑 같이 깜짝파티하자. 알았지?”

!”

, 그래. 아빠는 내일 아침 5시 반에 나가실 거야. 그러니까 깨우려면 적어도 4시 반에는 일어나 있어야겠지? 아빠도 치토세가 깨워주면 더 편히 일어나실 수 있을 거야.”

!”

그래, 우리 공주님은 이렇게 밝고 해맑아야 예뻐.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지? 어서 올라가렴.”

! 안녕히 주무세요!”

 

치토세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총총걸음으로 2층에 올라갔다.

어서 빨리 남은 집안일을 다 끝내고 내일을 준비해야지.

 

다음 날 이른 아침.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반응한 나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한 겨울인 덕분에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동네는 마치 한밤중인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스탠드 옆에 있는 시계를 보아하니 429분이다.

그건 그렇고, 시간도 시간이겠다, 치토세가 슬슬 오빠를 깨우러 와야 하는데.

 

하긴... 아무리 자명종시계보다 더 정확하다해도 이렇게 이른 시간엔 무리이려나.”

 

과연 무리일까?

안방 문 건너편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의 생각을 단번에 역전시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빠! 새 나라의 아저씨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죠! ,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 그래. 후훗... 누가 인간 자명종시계 아니랄까봐.”

 

치토세는 쏜살같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와 오빠의 위로 올라가 이불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지각하면 선생님한테 혼나요!”

... 넌 아침잠도 없니? 알았어, 일어날게... 일어날 테니까 좀 내려가...”

 

치토세가 온 몸을 흔드는 것에 반응한 오빠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도 어서 씻으시고 1층으로 내려오세요. 제가 아침식사도 다 준비해놨어요.”

? 네가?”

 

새벽 4시 반에 오빠를 깨우러 온 것도 모자라 아침식사까지 다 준비해놨다고?

너 대체 몇 시에 일어난 거니?

 

아빠, 꾸물거릴 시간 없어요! 어서 씻고 식사하셔야죠!”

아이고, 알았다니까...”

 

오빠는 치토세에게 손을 잡힌 채 질질 끌리며 방을 나갔다.

늘 보는 풍경이긴 하지만,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말 나랑 오빠가 딸 하나는 잘 둔 것 같다.

 

그렇게 평소보단 좀 요란한 아침식사가 끝나고, 이제 오빠가 나갈 시간이 되었다.

이 날부터 한 달. 나와 치토세 단 둘이 집을 지켜야한다.

 

그럼 갈게. 나 없어도 한 달 동안 잘 있을 수 있지?”

아무 걱정 말고, 오빠는 일에만 집중하세요. 뭐 깜빡한 건 없죠?”

물론이지. 그럼 한 달 후에 봐.”

잘 다녀와요.”

아빠, 잘 다녀오세요!”

 

오빠는 현관문을 넘어 늘 다니는 골목길을 통해 이른 아침의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나와 치토세는 오빠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현관 앞에 있다가 집에 들어갔다.

 

 

그 후로 3.

나와 치토세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집안일을 끝낸 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참 용의주도한 표범이군요. 경찰당국에서도 포위망을 좁히며 전국 방방곡곡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다 합니다.”

“3일 간 민간피해나 목격신고도 전혀 접수된 것이 없다고 하니, 정말 탈출한 것이 맞는 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3일 전 동물원을 탈출했다는 표범 얘기를 주제 삼아 여러 지식인들과 동물애호가들이 토론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그 표범이 아직도 안 잡혔다고? 이것 참, 불안해서 어떡한담.”

괜찮아요, 엄마. 확실히 대처방법을 알아놨잖아요.”

엄마는 아예 안 마주쳤으면 좋겠어.”

 

호랑이나 사자만큼 크지는 않지만, 표범도 엄연한 맹수다.

표범과 같은 대형 고양이과 동물들은 기습에 매우 능하기 때문에, 단 한순간이라도 실수하면 그대로 뱃속 구경을 해야 한다.

설령 대처방법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연습과 실전은 항상 다른 법이다.

그런 맹수를 실제로 정면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누구라도 당황하고 침착성을 잃게 된다.

 

텐노우지 공원 동물원의 입장은 어떤가요?”

동물원 측에서는 아직 어떤 입장표명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일이 커지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긴 하지만, 오히려 그쪽에서 그러면 그럴수록 일이 더 커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이 표범을 보시거나 생포하셨을 경우 그 즉시 근처 파출소나 경찰서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그 동물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그 표범이 탈출까지 생각한 걸까?

가능하면 별 일 없이 끝났으면 하지만, 조금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날 새벽.

나와 치토세는 하루 일을 마치고 각자의 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언제나 옆에 있던 오빠가 없으니 허전하다.

지금이야 이런 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그런대로 괜찮지만, 한참 신혼일 때는 잘 때마다 오빠가 잠시라도 옆에 없으면 많이 허전하고 불안해서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오빠를 사랑하고 필요로 했기 때문이겠지.

, 그런 건 둘째 치고... 잠을 잘 수가 없다. 자꾸 오늘 본 방송이 신경 쓰인다.

만약 동물원을 탈출한 표범이 우리 집에 몰래 숨어들어오기라도 하면... 어떡해야 좋을 지 상상이 안 간다.

아니야, 아야세. 그럴 리가 없잖니. 그 동물원이 우리 집에서 얼마나 먼데.

하지만... 세상사는 항상 만약이라는 게 뒤따르는 법인데...

아우, 미쳐. 너무 신경 쓰이고 불안해서 잘 수가 없다.

부엌에 내려가서 차라도 한 잔 해야겠다.

 

투투툭!!

 

? 이게 무슨 소리지?

부엌으로 내려가려고 안방 문을 연 순간, 집안 어디에선가 뭔가 물건 같은 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뭐지?”

 

지금 이 집에 있는 건 나와 치토세, 단 둘 뿐이다.

설마 치토세가 나처럼 부엌에서 차를 마시려고... 할 것 같진 않고,

혹시... 도둑?!

오빠는 왜 하필 이런 때 출장을 가서 나를 벌벌 떨게 만드는 거람?

잠깐만, 침착하자 침착해. 도둑 한 명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어.

바로 이럴 때를 대비해서 어렸을 때부터 호신술도 배우고 수갑도 갖고 다니고 그랬잖아? , 그래봤자 내 호신술의 피격대상은 늘 오빠였지만...

오빠야 원래 둔하니까 그랬다고 쳐도, 그 호신술이 다른 사람한테까지 무조건 통하라는 법은 없지. 혼자서는 도저히 무서워서 안 되겠다.

이럴 때 치토세라도 옆에 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될 텐데...

곤히 자는 애한테는 미안하지만 비상사태니까 별 수 없다. 당장 깨우자!

나는 곧장 안방 바로 옆에 있는 치토세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치토세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자고 있었다.

 

치토세, 치토세!”

 

나는 자고 있는 치토세를 양손으로 흔들어 깨웠다.

흔들림에 반응한 치토세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한참 자고 있는데 왜 깨우시는 거예요?”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냐. 당장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자.”

갑자기 왜요?”

도둑이 들어온 것 같단 말이야!”

 

나는 잠이 덜 깬 듯 찌뿌드드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치토세의 오른손을 잡아끌며 아래층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으이그, 여긴 우리 집인데 왜 내가 도둑처럼 행동해야 하는 거지?

 

투툭... 투툭...

 

발소리 비슷한 게 들려온다.

별로 멀지 않다. 확실히 이 집안에 나와 치토세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

 

치토세, 저기 부엌에 가서 국자 좀 가져와.”

국자는 갑자기 왜...?”

잔소리 말고 얼른!”

 

왜긴 왜야, 도둑을 잡아야 할 것 아니니.

그리고 치토세 너는 몸집이 작으니까 발소리도 그렇게 크게 나지 않을 거고.

어쨌든 치토세가 가져온 국자를 받아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소리가 난 방향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나와 치토세는 벽 뒤에 숨어 소리가 난 방향을 찾았다.

 

투툭... 투툭...

 

거실 창문 근처에서 발소리가 났다.

어두워서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뭔가 검은 물체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치토세, 엄마가 신호하면 불 켜. 알았지?”

.”

하나, , !!”

 

내가 셋을 외침과 동시에 치토세도 때를 맞춰 거실의 불을 켰다.

 

이 나쁜 도...! 뜨아아악!!”

 

나는 도둑이라고 생각된 물체를 향해 국자를 휘두르려다가 제자리에 그대로 푹 주저앉아버렸다.

국자 같은 게 통할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크르르르... 커엉!!”

 

노란 털과 피부를 바탕으로 무수히 많이 나 있는 검은 반점들, 한 번 문 것은 무엇이든 찢어버릴 수 있을 만큼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몸 구조에...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만 같은 차갑고 매서운 눈빛... 설마...

 

, 표범이잖아?!”

커어엉!!”

치토세, 위험하니까 물러서있어! , 그게 아니지! 엄마가 표범의 주위를 끌 테니까 그 틈에 빨리 전화로 경찰 아저씨들 불러!”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제자리에서 일어나 표범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섰다.

살짝 녀석의 외형과 체구를 보아하니 방송에 나온 표범과 상당부분 흡사하다.

게다가 이 녀석, 바닥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나를 보고 입맛 다시고 있는 건가?

설마 했는데 실제 살아있는 맹수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서게 될 줄이야. 살다보면 참 별 일도 다 있지... 가 아니잖아!

이대로 있다간 나도 치토세도 녀석한테 꼼짝없이 잡아먹힐 지도 모른다.

 

치토세, 뭐하는 거니?! 어서 경찰 아저씨 부르라니까!”

 

치토세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옆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얘가,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으면 잡아먹힌다고!

 

괜찮아요.”

“...?”

 

내가 잘못 들었나?

 

나쁜 애 아니에요.”

, 나쁜 애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얘가 왜 갑자기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지?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맹수랑 정면으로 마주보고 서서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쟨 사람을 해치는 나쁜 애가 아니에요. 단지... 지친 것 뿐이에요.”

지치다니... 대체 그게 무슨...”

, 이리와.”

 

무슨 애가 이렇게 용감하지?

치토세는 표범이 자신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보는 건 아랑곳하지도 않고, 오히려 녀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무서워하지 마. 난 널 해치지 않아. , 그냥 무섭고 지쳐서 그런 거지?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이리와.”

 

치토세는 표범 입 앞까지 다가갔다.

, 안 돼 치토세! 그건 고양이가 아니야, 표범이라고! 맹수란 말이야!

이대로 가다간 치토세가...!!

 

크르르르...”

 

잡아먹힐 줄 알았는데... 말도 안 돼.

표범은 치토세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경계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드러내고 있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집어넣고 마치 제 집인 것처럼 바닥에 편하게 눌러앉았다.

 

그래, 착하지? 무서워할 거 없어.”

 

치토세는 겁도 없이 표범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녀석은 반항하기는커녕 제자리에 얌전히 앉아 치토세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감촉을 즐겼다.

그 모습은 마치, 주인이 애완고양이를 쓰다듬어주는 모습과 흡사했다.

 

, 치토세... 네가 무슨 타잔이니?”

 

얜 정말이지...

날 때부터 순수한 애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굶주린 맹수를 자기 친구로 만들 줄은...

 

이름은 뭐가 좋을까? 넌 뭐가 좋아?”

 

동물이 어떻게 사람 말을 알아듣니?

 

그 표범 전에 뉴스에 나왔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니까 얼른 경찰에...”

, 그렇지! 레온이 좋겠다. 네 이름은 레온이야. 알았지?”

 

엄마 말 좀 들어, 제발!

치토세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표범에게 이름을 붙였다.

 

레온, 앞으로 나랑 사이좋게 지내자. 알았지?”

 

치토세는 레온이라 이름붙인 표범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치토세의 말을 알아들은 듯, 녀석도 치토세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짐승도... 말만 못하지 미소는 지을 줄 아는구나.

 

 

시끌벅적했던 새벽이 지나자 아침을 알리는 햇빛이 집안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그 날 아침.

 

정말 무서운 새벽이었어요.”

그랬구나. 미안해.”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교양프로그램을 봄과 동시에 오빠한테서 온 안부전화를 받고 있었다.

 

어찌 보면 표범보다 치토세 때문에 더 놀랐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날 때부터 순수한 애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맹수까지 자기 친구로 만들 줄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특하잖아. 안 그러면 치토세가 아니지. 안 그래?”

말도 마세요. 지금도 녀석이 혹여나 뒤통수를 칠까봐 조마조마하다고요.”

 

나는 휴대전화에 대고 얘기하며 무심코 거실에 있는 치토세와 레온을 바라봤다.

치토세는 레온의 허리를 베개 삼아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레온도 제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확실히 사이는 좋아 보이지만, 저러다 갑자기 돌변해서 치토세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크아암~!”

 

하는 걱정은 할 필요도 없겠다.

레온은 제자리에 드러누운 채 여유롭게 하품까지 했다.

 

하는 걸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겠네요.”

우리 딸이지만 참 굉장하지 않아? 나라면 무서워서 녀석한테 접근할 생각도 못할 텐데 말이야. 역시 치토세다워.”

저도 동감이에요.”

 

딩동.

 

? 누가 왔나?

초인종이 울렸다.

 

? 오빠, 누가 왔나 봐요. 그럼 나중에 또 전화할 게요.”

그래, 알았어.”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현관으로 갔다.

 

누구세요?”

텐노우지 공원 동물원에서 왔습니다.”

? 텐노우지 공원 동물원?”

 

텐노우지 공원 동물원에서 왔다면... 역시 레온을 다시 데리러 왔구나.

그나저나 레온이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어쨌든 나는 별 의심 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 어서 들어오세요.”

 

우리 집에 찾아온 이 사람은 자신의 소속을 명확히 알려주는 배지가 달린 점퍼차림에,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주름이 얼굴 군데군데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잘생기고 깔끔한 느낌을 주는 중후한 인상의 남성이었다.

확실히 동물원 관계자인 건 분명한데?

 

이 집에 저희 동물원에서 탈출한 표범이 있다는 주민들의 제보를 듣고 왔습니다만...”

, 그러세요? 그럼 이리 오세요.”

 

나는 동물원 직원을 거실로 안내했다.

 

크르르르!!”

 

치토세와 함께 여유롭게 낮잠을 청하고 있던 레온이 갑자기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뒤에 있는 직원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아야! 레온. 갑자기 왜 그래?”

 

레온이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치토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크르르르르!!”

 

레온은 얼굴표정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직원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것을 아는 걸까?

 

레온, 안 돼!”

 

치토세가 레온을 다그쳤다.

그러자 레온은 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펴고 다시 제자리에 눌러앉았다.

 

맹수를 이런 일반 가정집에 풀어놓으면 위험합니다. 녀석을 붙잡아주신 사례는 확실히 드릴 테니, 녀석을 저희에게 인계해주십시오. 밖에도 저희 동물원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야 그렇지만...”

 

창문을 통해 보니 집 밖에 짐승 한 마리는 족히 들어갈 만한 철제 우리를 실은 트럭과 직원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대기하고 있었다.

하긴, 애초부터 레온은 동물원에서 정식으로 외국과 계약해서 우리나라에 수입해 온 동물이니까.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치토세, 어서 레온을 이 분들한테 보내.”

왜요?”

동물원에서 레온을 다시 데리러 오셨어.”

?”

 

치토세는 제자리에 그대로 멈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분들이 원래 레온의 주인이셔. 쉽게 얘기하면 잃어버린 애완동물을 다시 찾으러 오셨다고 하면 될까? 하여튼 그러니까 돌려드리자. 알았지?”

싫어요!”

?”

 

싫다고?

 

레온한테 다 들었어요! 동물원에서 살기 싫었다고! 저 아저씨들이 괴롭혔다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몰래 빠져나왔다고! 저런 나쁜 사람들한테는 절대 레온을 보낼 수 없어요!”

치토세, 그게 무슨 말이야? 말도 안 통하는 동물이랑 무슨 수로 얘기를 한다고?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어서 보내드려.”

저 아저씨들한테 가면 레온은 또 괴롭힘 당할 거예요! 레온은 내 친구에요! 내 친구를 괴롭히는 사람은 절대로 용서 못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얘가 정말!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말만 하는데, 너 계속 그러면 엄마 진짜 화낸다? 고집부리지 말고 보내드려. 어서! 지금 당장!”

싫어! 절대 안 보낼 거예요!!”

너 엄마 말 안 들을 거니?!”

 

치토세가 레온을 있는 힘껏 껴안았다.

동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기특하지만, 원래 데리고 있던 주인이 정당한 방법으로 반환을 요구하니 별 수 없다.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표범이랑 너무 정이 들었나 봐요. 어떡하죠?”

 

나는 직원을 향해 정중히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정이 들어도 어쩌겠습니까. 녀석은 저희 동물원에서 사육하고자 아프리카 사바나 관리인들과 계약을 맺어서 데려온 놈인데요. 이대로 계속 외부에 방치했다간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반드시 반환하셔야만 합니다.”

역시 그렇겠죠?”

 

하룻밤동안 레온과 정이 들어버린 치토세에겐 미안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 레온은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치토세. 엄마가 전에도 말했잖아.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도 많다고. 레온도 여기 있는 것보단 원래 있던 동물원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할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보내주자. ?”

싫어요! 절대 안 보낼 거예요!”

하아... 어쩔 수 없네.”

 

정말 이렇게 까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치토세를 품에 안은 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양팔을 꽉 죄였다.

 

, 엄마!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놔주세요!”

 

치토세는 내 팔에 붙잡힌 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 역시 치토세가 옴짝달싹 못하도록 온 힘을 쥐며 버텼다.

 

제가 딸을 꽉 붙잡고 있을 테니까 이 틈에 표범을 데려가세요.”

, .”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물원 직원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부채꼴 모양의 진영을 펼치며 레온을 포위했다.

 

!

크어어엉!!”

 

직원이 레온을 향해 마취 총을 쐈다.

 

크르르르... 크어어어어엉!! 크어어어어!! 크어어억!!”

 

레온은 제자리에서 직원들을 노려보며 큰 소리로 쉴 틈 없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러는 것도 잠시.

곧이어 마취약의 기운이 온 몸에 퍼진 듯, 레온의 몸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들 레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크르르르...”

 

레온은 어떻게 해서든 제자리에 똑바로 서려고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레온은 마취약의 기운을 끝내 견뎌내지 못하고 제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레온이 쓰러지자 직원들은 레온의 입을 고무 입마개로 막은 뒤 밧줄로 네 발을 꽁꽁 묶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흰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직원 두 명이 레온을 짊어지고 현관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다른 직원들도 밖으로 나갔다.

 

레온! 레온!! 레오온!!!”

 

치토세는 현관문을 향해 울음보를 터뜨리며 레온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레온과 강제로 헤어진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나와 치토세의 관계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서먹해졌다.

그 날 이후 이틀이 지났다.

 

치토세! 밥 먹으렴!”

 

나는 2층 방에 있는 치토세를 불렀다.

하지만 내 얘기를 듣고서 모른 체를 하는 건지, 치토세에게선 아무런 답이 오지 않았다.

보나마나 아직도 레온 때문에 화난 거다.

치토세의 레온을 아끼고 사랑하던 마음을 결코 모르는 건 아니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쉽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치토세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잘 모르겠지.

 

치토세! 레온은 그만 잊어! 엄마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레온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것뿐이야! 걔를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어!”

몰라요! 엄만 바보! 엄마가 제일 미워요!!”

 

아주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저렇게 식사도 거른 채 화만 내고 있으면 건강을 다 해칠 지도 모르는데... 정말 이럴 땐 오빠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한탄스럽다.

 

치토세! 너 계속 그러면 엄마도 가만 안 있을 거야!”

 

겨우 이런 일 때문에 치토세의 몸이 상하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강제로라도 방에서 나오게 하는 수밖에.

 

딩동!

 

이제 막 치토세의 방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누구지?

나는 일그러져있을 것이 분명할 얼굴표정을 최대한 펴고 현관 앞에 나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텐노우지 공원 동물원에서 왔습니다.”

? 동물원에서요?”

 

? 동물원에서 왜?

나는 의구심을 품은 채 현관문을 열었다.

이틀 전에 왔었던 동물원 직원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크어어엉!”

 

현관문이 완전히 열림과 동시에 표범 한 마리가 집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이 녀석은... 설마 레온?

 

, 레온?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하아... 말도 마십시오. 녀석 때문에 동물원 전체가 시끌벅적했었답니다. 그 날 따님과 헤어진 이후론 식사도 거르면서 우리 안을 온통 헤집고 다니지 뭐예요. 그것도 모자라서 녀석이 밤낮없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야간 당직 직원들이 모두 불면증에 걸려버렸답니다. 참 녀석이 왜 그러나 싶어서 하이디” -실제 동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여성. TV동물농장 등에도 여러 번 출연함.- 씨한테 데려가서 의뢰해 보니, 글쎄 어떤 아이랑 헤어진 것 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다지 뭡니까.”

“...? 그게 무슨...”

 

동물원 직원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표정에선 황당함이 묻어나왔다.

나 또한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하이디라는 그 외국여성이 실제로 동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그 능력으로 많은 사건을 해결한 사례도 나 역시 익히 들은 얘기라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녀석을 이 집 따님에게 드리기로 결정해서 이렇게 데려온 겁니다.”

, 그래요? 정말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이미 관공서의 허가는 다 받아놨습니다.”

치토세! 어서 내려와 봐! 레온이 왔어!”

 

나는 치토세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곧이어 치토세가 2층에서 총총걸음으로 내려왔다.

 

, 레온...? 레온!”

 

치토세는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힘껏 레온을 껴안았다.

이에 레온도 혓바닥으로 치토세의 뺨을 핥았다.

 

아이, 레온, 간지러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던 치토세의 얼굴표정이 태양처럼 환해졌다.

 

치토세, 이제 됐지?”

이제 그 녀석은 네 거란다.”

! 엄마, 그리고 아저씨! 고맙습니다! 이제 레온 너도 정식으로 우리 집 가족이 됐어!”

 

치토세는 레온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애정을 표현했다.

이에 레온도 눈을 감고 치토세의 애정표현에 응해주었다.

 

그렇게 좋은가?”

 

동물보호법에 따라 개나 고양이처럼 작은 동물이 아닌, 호랑이, 사자, 곰이나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레온처럼 맹수를 사육하려면 관공서의 허가가 필요하다던데.

,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다. 이미 동물원 관계자들이 해결해줬고, 괜히 치토세와 레온의 즐거운 시간을 망치기도 미안하고.

이제 이 녀석도 우리 집 가족이니까 나도 유대감이나 키워볼까?

 

그래, 레온. 이제 내가 네 엄마... 꺄악!!”

크어엉!!”

 

레온은 내가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자 나를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짖었다.

난 머리 쓰다듬어주는 것도 안 되니?

 

레온,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때찌!”

 

치토세가 레온의 머리에 딱밤을 때렸다.

그러자 레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향해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야말로 맹수지만, 치토세 앞에만 서면 이렇게 순해지다니.

정말 치토세와 레온의 유대관계는 나는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이 둘만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치토세와 레온이 서로에게 애정표현을 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나도 어렸을 때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지에서 동물과 교감을 나누는 사람들을 본 적이 두루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영화 같은 일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 둘이 한자리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오빠한테 보내주자.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나 혼자만 보기엔 너무 아까우니까.

그나저나, 레온 얘는 고기를 얼마나 먹을까? 갑자기 가계부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