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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블 후일담 창작 단편 14. 출근 전의 모닝키스

히아신스v 2024. 1. 20. 13:33

이번 팬픽을 끝으로 아야세 팬픽을 잠시 접고, 루리 팬픽으로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향후 내여귀 본편의 결말을 따라 팬픽 시리즈의 향방을 결정지을 계획입니다.

마지막 팬픽은 한 달 간 지방출장을 갔던 쿄스케가 집에 돌아오면서 생기는 트러블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다루며, 시점은 쿄스케와 아야세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며 끝부분에 임박하면 치토세의 시점으로 바뀌어 마무리 될 것입니다.

원작과 비교해 어색하거나 다른 설정이 나오더라도 팬픽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빠가 지방출장 때문에 집을 비운 지 어언 한 달이 흘러, 돌아오기로 예정된 날이 다가왔다.

애완동물로 키우기엔 너무 덩치가 큰 녀석이 집에 들어와 새 가족이 되었다는 걸 빼면 별로 특별한 일은 없던 평범한 한 달이었지만, 늘 옆에 있어주던 오빠가 없어 정말 허전한 한 달이기도 했다.

오빠가 돌아오는 날을 맞아 나와 치토세는 대대적으로 집안 청소를 했다.

 

어머? 이건...”

 

어질러져 있던 화장대의 서랍장을 정리하다 신혼시절의 추억이 진하게 묻어있는 물건을 발견했다.

8년 전, 오빠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맞춰 내게 선물한 에메랄드 반지였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이렇게 다시 보니 정말 반갑네?”

 

나는 먼지가 쌓여있는 반지에 호~ 하고 입김을 불어 먼지를 닦아내었다.

이 반지를 선물 받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만큼 가정형편이 좋지 못했었다.

비록 그랬어도 우리 부부는 충분히 만족감을 느꼈다. 단순히 한 자리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으니 말이다.

 

그땐 어쩜 그렇게 행복했는지...”

 

지금도 행복하지만, 그땐... 그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나는 에메랄드 반지를 양손으로 꽉 쥐고 품으로 끌어안았다.

반지를 선물 받을 때의 감동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일주일도 채 안 남기고 있던 8년 전의 어느 날.

당시 오빠는 말단 사원이었고, 나는 현재와 같은 전업주부였다.

오빠는 크리스마스에 맞춰 휴가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근무인원 부족으로 일을 나가야만 했다.

나는 나 때문에 휴가도 제대로 못 즐기고 고생하는 오빠를 위해, 그에게 딱 맞는 스웨터를 만들어줄 것을 결심했다.

그런데 나만 이런 결심을 한 건 아니었나보다. 스웨터를 만들어 선물하기로 결심한 그 날, 오빠가 내게 며칠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냐는 질문을 한 거다.

질문에 잠시 고민을 했던 나. 하지만 답을 주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빠가 나를 믿어주는 만큼, 나도 그를 어느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크리스마스이브가 오기를 기다린 내게 오빠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을 안겨줬다.

하늘도 우리의 사랑을 축복이라도 해주는 듯, 우리 부부는 흰 눈이 내리는 밤하늘 아래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나는 반지를 꼭 끌어안은 채 8년 전의 감상에 푹 빠졌다.

 

엄마. 엄마! 지금 뭐하세요?”

 

추억에 푹 젖어있는 나의 감상을 깨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거실 청소를 하고 있던 치토세가 어느 새 내가 있는 안방에 올라와 있었다.

 

그렇게 꾸물대시면 아빠가 오실 시간에 맞춰서 마중 나갈 수가 없잖아요.”

어머 얘가, 말하는 것 좀 봐? 완전히 아줌마가 다 됐네?”

아이, 엄마! 전 아줌마 아니에요.”

아줌마가 아니면? 그럼 어린애야?”

어린애도 아니에요! 7살이면 어른이라고요!”

 

내가 자신을 놀리는 것에 당황한 듯, 치토세는 양쪽 뺨을 부풀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치토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어른스럽긴 하지만, 이럴 땐 정말 어린애인데 말이지.

 

그래? 어른인데 아줌마가 아니라면 어린애지. 안 그래?”

, 아무튼! 전 아줌마도 아니고 어린애도 아니에요! 부우~!”

 

치토세가 양쪽 뺨을 부풀리며 표정을 찡그리는 건 삐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딸이긴 하지만 이런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치토세가 삐지며 뺨을 부풀릴 땐 얼굴을 손가락으로 살짝 찔러보고 싶어진다.

 

? 반지다. 엄마, 그 반지는 뭐예요?”

 

치토세는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반지를 보자마자 뾰로통한 표정을 풀며 내게 질문했다.

 

이거? 이건 아빠가 엄마한테 해 준 선물이야.”

약혼반지에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여튼 그런 게 있어. 너도 나중에 결혼하면 다 알게 돼.”

알았어요. , 그렇지. 엄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곧 아빠 오실 시간인데 시간 못 맞추면 어떡해요?”

그렇게 아빠가 보고 싶어?”

그럼요! 그러니까 서둘러요. 어서요!”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천천히 가자.”

 

치토세는 양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아끌며 아래층으로 향했다.

치토세가 오빠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나도 속으론 그를 빨리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모처럼 찾은 반지인데, 끼고 나가서 신혼 분위기나 연출해볼까?

바보 오빠가 이걸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치토세는 집안 청소를 끝낸 뒤 곧 장을 보러 동네 대형마트로 향했다.

오빠도 분명 내가 해주는 밥을 한 달 동안 못 먹어서 안달이 났을 테니, 연애할 때 자주 해줬던 요리들을 해주면 감동의 쓰나미를 연출하겠지.

그런데 평소엔 평온하고 조용하던 마트가 이 날은 왜 이렇게 붐비는지 모르겠다.

마트 내엔 우리 말고도 장을 보러온 주부들과 젊은 여성들이 수두룩했다.

 

우와~! 사람들이 무지무지 많아요.”

그러게. 제 시간에 맞춰서 다 볼 수 있을까?”

 

우리 집처럼 먼 곳으로 출장 갔다 돌아오는 가장을 맞이하기라도 하는 걸까?

어쨌든 마트에 들어온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채소 코너.

사람들이 많아 복잡한 게 문제긴 하지만 운은 좋구나.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야채들이 진열대에 즐비하게 널려있다.

 

엄마. 이 감자가 신선해보여요. 이걸로 해요.”

그래? , 정말. 광택도 나고 크기도 큰 게 네 아빠한테 딱 맞겠다.”

아빠한테 맞는 게 뭔지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엄마가 훨씬 더 잘 알거든요?”

 

나와 치토세는 장바구니에 감자를 2개 정도 넣고 다음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잠깐, 그러고 보니 집에 식초가 남아 있었던가?

 

, 맞다. 전에 목욕한다고 다 써서 식초가 없지. 식초도 하나 사야겠다.”

제가 가져올게요!”

천천히 가렴. 아무도 안 빼앗아가니까.”

 

치토세는 식초가 있는 식료품 진열대로 바람처럼 쏜살같이 달려가 식초를 한 병 가지고 왔다.

 

우리 공주님 꽤 빠르시네요?”

당연하죠! 저는 뭐든지 잘해요.”

, . 어련하시겠네요.”

 

나와 치토세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활짝 웃으며 다음 식료품을 찾고자 자리를 옮겼다.

 

손님 여러분! 잠깐만 주목해주십시오!”

 

마트 남자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트 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쏠렸다.

나와 치토세 또한 그랬다.

 

지금부터 딱 30분 동안만, 생선 반값 세일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이름 하여 점장님이 미쳤어요, 이벤트! 오늘 저녁에 생선 요리를 하실 주부 분들은 서두르시는 게 좋겠죠?”

 

세일이라는 단어는 전 세계의 모든 주부들을 식료품 쟁탈 전쟁터로 이끌어가는 마()의 단어다.

나와 치토세가 있는 장소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자세히는 안 보였지만, 얼핏 보니 장어도 있는 것 같았다.

마침 오늘 저녁에 장어요리를 하려고 했는데 잘 됐다.

점원의 이벤트 시작 선언과 함께 마트 내 생선 코너를 향해 주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이대로 멍하니 있다간 한 마리도 못 건질 테니 어서 서두르자.

 

엄마, 잠깐만요.”

 

치토세가 생선 코너로 서둘러 뛰어가려던 나의 옷자락을 잡았다.

 

?”

엄마는 여기 계세요. 제가 갔다 올게요.”

? 네가? 아니야. 저긴 엄마한테 맡겨. 네가 갔다간 저 속에 뒤엉켜서 못 빠져나올 테니까.”

 

아줌마들이 몰려있는 곳에 치토세 같은 어린애가 뒤엉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나나 오빠 같은 성인도 빠져나오기 힘든데 치토세는 오죽할까.

 

괜찮아요! 저는 몸집이 작으니까 필요한 것만 쏙 빼서 사올 수 있어요.”

 

치토세의 얼굴표정에 자신감이 충만해있다.

치토세의 두 눈은 마치,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듯 나를 향해 오로라를 쏘는 것 같았다.

몸집이 작아서 필요한 것만 쏙 빼서 사올 수 있다는 치토세의 의견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으니. 한번 맡겨볼까?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별 수 없지. 알았어. 네가 가져와야 할 건 장어야. 아빠가 장어요리를 엄청 좋아하시거든.”

걱정 마세요! 꼭 가져올 게요!”

 

치토세는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수많은 주부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생선 코너로 뛰어갔다.

 

파더콤은 정말 위대하다니까.”

 

걱정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감도 좋다.

파더콤인 치토세라면 오빠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해낼 수 있으니까.

 

이거 놔요! 내가 먼저 찜했다고!”

찜했으면 이름이라도 써놓으시던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지!”

도둑질은 안 돼요! 빨리 놔요!”

 

주부들과 젊은 여성들의 아우성소리가 조금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나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린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주부들과 젊은 여성들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고 긴장한 남자들의 모습도 두루 보인다.

세일이라는 단어 앞에 각성하지 않는 여자가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 정말이네?”

 

반신반의하며 얌전히 지켜보니, 치토세는 스스로가 장담한 임무를 아주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치토세는 어른들의 장어 쟁탈전에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맛있어 보이는 -본인이 보기에- 장어만 쏙쏙 잘 골라냈다.

 

오늘은 장어풍년이구나.”

 

설마 했지만 맡기길 잘했다.

 

엄마, 보세요!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요!”

 

주부들의 싸움터에서 훌륭한 전공을 세우고 돌아온 치토세가 나를 향해 가져온 장어들을 내밀며 말했다.

 

, 공주마마. 아주 훌륭하시옵니다.”

 

나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치토세와 시선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 참! 엄마, 저 어린애 아니란 말이에요.”

이건 어린애 취급이 아니라 잘했다고 칭찬하는 거야.”

 

내가 머리를 쓰다듬음과 동시에 치토세는 양쪽 뺨을 크게 부풀리며 자신이 삐졌음을 표현했다.

 

곧이어 장을 다 본 우리는 마트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역시 겨울이라 해가 짧다. 여름이었으면 한창 해가 떠 있을 시간인데, 어느 새 해는 서쪽을 향해 사라져가며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 아빠 언제 오세요?”

일단 집에 들러서 오늘 장 본 것들 갖다놓고 역에 가서 기다리자. 오늘 5시 반 열차라고 했으니까 이제 곧 오시겠지.”

 

휴대전화를 통해 시간을 보니 벌써 4시 반이다.

그래도 오빠가 오기까지 아직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으니 너무 서두르진 말까.

 

엄마! 빨리요! 아빠 오실 시간에 늦겠어요!”

그렇게 안 서둘러도 돼.”

안 돼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아빠가 서운해 하신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어서 서둘러요!”

우리 치토세가 이렇게 성미가 급했었나? 아빠가 알면 깜짝 놀라시겠네?”

 

1시간이나 여유가 있는데도 서두르자니,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은 거니?

뭐가 그리 급한 건지. 치토세가 내 손을 양손으로 꼭 붙잡고 잡아끌었다.

평소에는 여유로운 모습만 보여주던 치토세가 이번만큼은 평소와 많이 다르다.

내가 어디 먼 곳에 갔다가 돌아올 때도 이런 반응을 보이려나?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제로지. 치토세는 절대로 그럴 아이가 아니다.

단지 상상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섭섭하고 서운할 줄은. 아예 상상도 하지말걸 그랬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조금만 천천히 가자.”

어떤 일을 하던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제일이라고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유비무환이라니. 벌써부터 그런 말도 다하고.

요즘 초등학교는 1학년 때부터 사자성어를 가르치는 모양이다.

어쨌든 나와 치토세는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는 석양과 마주본 채 집으로 향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신칸센 열차 안.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목적지에 도달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을 비웠으니 두근거리는 게 당연한 건가.

아니, 어쩌면 아야세가 차려주는 식사를 다시 먹을 수 있게 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걸지도 모르지.

아야세랑 치토세는 잘 지내고 있을까?

기대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하아... 도무지 진정이 안 되는군. 잠이라도 잘까.”

 

나는 좌석을 약간 뒤로 눕힌 뒤 눈을 감았다.도착하려면 앞으로 1시간 정도 남았군. 그 안에 가벼운 잠이라도 잘...

아우!! 요놈의 뇌와 심장이 주인의 선잠을 쌍으로 방해한다! 도저히 못 자겠다!

자려고 눈을 감으니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사뿐히 지르밟고 또 스쳐지나가는구나.

아야세가 마중 나온다고 했었지?

열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울며불며 달려와 내 품에 꼭 껴안기지 않을까?

크하하하하! 상상만 해도 즐겁고, 또 기뻐서 미치겠다!

그러다가 남들 다 보는 앞에서 키스라도 하려고 하면...!

 

우하하하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 아우, 사랑스러워!!!!”

 

나는 제자리에 앉은 채 연체동물처럼 온 몸을 배배꼬며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뭐야, 시끄럽게.”

쪽팔리지도 않나?”

 

열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후훗, 볼 테면 보라고 해. 욕할 테면 욕하라고 해.

하나도 안 쪽팔린다. 지금 내 정신세계 안에는 아야세와 치토세 말고 다른 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지.

 

아야세! 치토세!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간다!!”

 

나는 허공에 대고 있는 힘껏 외쳤다.

 

♬♩♪~

 

허공에 대고 있는 힘껏 고성방가를 지름과 동시에 주머니에 넣어놨던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진동했다.

이런, 진동으로 해놓는 걸 깜빡했다.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는 건 허공에 대고 고성방가 하는 정도로 충분하니 빨리 나가서 전화나 받자.

나는 서둘러 휴대전화의 벨소리를 진동모드로 바꾸고 열차 출입구로 나갔다.

누가 전화했을까. 혹시나 아야세가? 얼른 송신자를 확인해보자.

 

? 이사님이시군.”

 

아주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나의 기대감은 무참히 무너져버렸다.

잠깐.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것도 상대를 가려가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내 전화를 울리고 있는 사람한테 잘하지 않으면 바로 모가지라고.

 

, 이사님. 코우사카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잡고 전화를 받았다.

 

, 코우사카 과장. 목소리가 참 해맑군.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 아닙니다. 그냥 저기...”

하하하하. 집에 돌아가서 부인 만날 생각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닌가?”

 

역시 연륜은 못 속인다니까.

회사 내에서 가장 족집게인 사람을 꼽으라면 이사님을 빼놓을 수 없다.

8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내가 사원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듯, 실장이었던 이사님도 이사로 승진하셨다.

 

역시 이사님 대단하십니다. 제 마음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계시니 존경스럽습니다.”

나도 자네만한 나이 대에 그랬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일할 때나 잘 때나 집에 혼자 있을 부인생각 때문에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원. 어쨌건 자네가 열심히 뛰어준 덕분에 이시다 콘체른과의 거래 성사도 잘 되었어. 한 달 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네.”

과찬이십니다.”

 

거래를 성사시키자고 무릎 꿇고 절하며 애원했다는 말은 차마 못 꺼내겠지만 뭐...

그런 걸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그 누구더라, 자네 딸 말일세. 이름이 치토세라고 했나?”

, 그렇습니다.”

자네 부인을 쏙 빼닮아서 미모가 보통이 아니더군. 전에 자네 부인이랑 한 번 찾아온 걸 본 뒤로는 머릿속에서 그 아이의 모습이 떠나가질 않지 뭔가.”

... 그러십니까?”

 

아빠인 내가 봐도 치토세의 미모는 한 미모 한다.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저 멀리 미국에 건너가서 살고 있는 손주 녀석 얼굴이 떠올라서 말일세. 자네 집에 방문해서 한 번 봤으면 싶은데 괜찮겠는가?”

!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가족을 잘 두면 복이 절로 굴러들어오는구나.

8년 전, 아야세 덕에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했는데 이번엔 치토세 덕을 보게 됐다.

나는 이사님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잡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 고맙네. 덕분에 내 눈이 호강하게 생겼어. 내가 부하 하난 확실히 잘 둔 것 같군 그래.”

이사님께서 누추한 저희 집까지 몸소 방문해주신다니 제가 오히려 영광스럽죠! 집사람한테도 얘기해놓겠습니다.”

누추하긴 어디가. 너무 부담 갖지는 말게.”

 

부담 갖지 말라는 직장상사의 말을 그대로 실행하면 절대로 안 된다.

말은 그렇게 하고 부하가 자신을 어떻게 대우하는 지 속마음으로 점수를 매기며 평가하는 그런 족속이 바로 상사들이니 말이다.

상사에게서 얻은 점수가 좋으면 회사 생활이 순탄하고, 좋지 못하면 그만큼 불편해진다.

그래도 일단 치토세가 있으니 점수가 어느 정도 플러스 된 상태에서 평가가 시작되겠지?

 

그럼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이사님.”

그래. 돌아와서 보세.”

 

나와 이사님은 동시에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나자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좌석에 몸을 뉘였다.

 

치토세. 네 덕분에 아빠 회사 생활이 파란만장해지겠구나.”

 

나만큼 부인과 자식 잘 만난 가장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지.

설령 나온다 해도 하나도 안 부럽지만.

 

뭐야, 또 전화?”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혹시 이번엔 정말로 아야세가?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전화 송신자를 확인했다.

 

제길! 이놈의 전화는 왜 언제나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의 전화만 수신하는 거야?”

 

송신자가 아야세가 아니고 아카기라는 사실이 나를 이렇게까지 절망이라는 나락으로 떨어뜨릴 줄은 몰랐다.

나는 그 길로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출입구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카기냐?”

그래, 나다 인마! 한 달 동안 현장에서 개 같이 구른 소감이 어떠냐?”

 

이 녀석은 왜 전화를 하자마자 기분 나쁜 얘기를 늘어놓는 건지 원.

 

내가 개 같이 구른 덕분에 거래가 성사돼서 기분 좋다.”

그래? 하긴, 이사님도 네 활약을 오늘 하루 내내 칭찬하시더라. 부럽다. 과장 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승진할 길이 열리다니.”

 

아카기가 전화에 대고 나에 대한 부러움을 표현했다.

 

승진할 길이 열리긴 뭘 열려? 그냥 성심성의껏 일했을 뿐이야.”

어이구, 우리 과장님은 왜 이렇게 겸손하실까? 동기는 그저 웁니다! 흑흑!”

울 시간 있으면 일이나 더 열심히 해. 혹시 모르냐? 그럴 시간에 더 열심히 일해서 실적 올리면 승진할지.”

나는 언제나 열심이니까 너무 걱정 마셔. , 그렇지! 너 돌아오면 언제 날 잡아서 같이 한 잔 안 할래?”

술이라면 사양 안 한다.”

 

술자리 빼놓고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지.

전화를 건 사람이 아야세가 아닌 것 때문에 좀 절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카기 이 녀석이 나한테 술을 권할 땐 그런 불편한 마음이 싹 가신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 ? 바꿔달라고?”

 

아카기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 코우사카. 미안하다. 마누라가 옆에서 자꾸 바꿔달라고 하네.”

그래? 알았어. 오랜만에 목소리나 들어볼까. 바꿔줘.”

여보세요? 쿄우니?”

 

전화 반대편의 목소리가 아카기에서 그 부인으로 바뀌었다.

나를 쿄우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

바로 마나미다.

 

그래, 나다. 잘 있었냐?”

나야 언제나 잘 있지. 너 출장 갔다 이제 돌아온다며?”

한 달 간 참... 스릴이 넘쳤어.”

 

내가 지방출장을 나오고 이틀 후,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마나미는 아카기와 결혼했다.

나는 이 둘의 결혼식에 참여를 못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카기가 먼저 마나미에게 프러포즈를 했다는 것 같다.

이미 나이가 들만큼 든 신혼부부라 다른 젊은 부부들보다 더 하루하루가 깨알같이 행복하다나 뭐라나.

하긴, 신혼 때는 다 그렇지.

 

네 남편은 잘해 주냐?”

~마나 잘해주는데. 어린애처럼 밥 달라고 보챌 때 빼고. 그나저나, 아야세랑 치토세가 널 못 봐서 한 달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빨리 가서 위로 좀 해줘.”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럴 참이야. 하하. 평생 결혼 안 할 것 같던 네가 결혼하다니, 아직도 너랑 그 녀석이 신혼부부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야.”

신혼부부인 것도 좋지만, 난 빨리 너희 집처럼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는 걸? 우리도 너희 치토세 같은 예쁜 딸 한 명만 있으면 행복이 배가 될 텐데 말이야.”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게 되겠느냐 만은... 너희도 빨리 아이 가질 수 있게 되길 빈다.”

 

치토세 같은 딸이 있으면 행복이 배가 되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행복이 배가 되는 것처럼 아카기의 피곤함도 배가 될 거다.

인간 자명종이자 철저한 바른생활 어린이인 치토세가 딸이라면 아침잠은 포기해야 한다.

 

그 말대로 행복함은 배가 되겠지만, 그래도 치토세 같은 아이가 태어나면 아카기가 좀 힘들 텐데? 크큭.”

? ?”

그 녀석 완전 인간 자명종시계야. 언제나 아침 6시 정각이 되면 날 깨우러 안방까지 올라와.”

어머나, 그래? 엄청 기특하잖아.”

일하는 날만 그러면 몰라요. 주말에도 인정사정없다는 게 문제지. 그래서 마음 편히 늦잠 자지도 못하고 아침 댓바람부터 조깅해야 한다니까. 치토세 앞에만 서면 내가 어린애고 걔가 어른 같아. 아직 7살 밖에 안 된 애가 못하는 거 하나 없으니 누가 보면 신인 줄 알 정도라니까.”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젠 적응이 돼서 괜찮다.

치토세의 파더콤 덕분에 결혼하기 전보다 훨씬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서 좋고.

 

이야, 치토세가 완전 속이 꽉 찼네? 그 정도면 바로 시집보내도 되겠다.”

아빠랑 결혼할 거예요, 라는 말만 좀 안 하면 그래도 되겠지.”

네가 계속 그러니까 자꾸 부러워진다, . 난 그런 딸 한 명 있으면 정말 소원이 없을 것 같아.”

 

내 말이 자랑하는 걸로 들렸나.

하긴, 어떻게 보면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이제 슬슬 장보러 갈 시간이네. 그럼 쿄우, 잘 지내고 나중에 또 전화하자.”

그래. 신혼 생활 잘 보내라.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니까.”

염려 놓으세요. 직접 말씀 안 하셔도 그럴 거니까요.”

 

나는 마음속으로 마나미의 결혼생활이 평탄하기를 빌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꽤 오래한 것 같은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직 30분은 남아있다.

에휴, 할 일도 없고 심심하고. 휴대전화나 가지고 놀아볼...

, 뭐야? 심심하니까 인터넷서핑이나 하려고 했더니 이젠 휴대전화까지 배터리가 없다고 말썽이네?

, 남은 30분 동안 잠이나 잘 수밖에 없군.

 

. . .

 

나와 치토세는 역의 매표소 앞의 벤치에 앉아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취!”

 

내 옆에 멍하니 앉아있던 치토세가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 이상하다? 나 감기 안 걸렸는데?”

 

재채기 좀 한다고 감기면 모든 병들이 다 불치병이겠지.

치토세는 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휴지를 꺼내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코를 풀었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줄도 알고, 내 딸이지만 참 속이 꽉 찼다.

 

혹시 다른 사람이 네 얘기 하는 거 아닐까?”

? 누가요?”

예를 들면 아빠라거나.”

그럼 저 재채기 계속 할래요!”

다른 사람들한테 폐가 되니까 그쯤 해두렴.”

 

오빠 얘기만 나오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니 원.

어쨌든, 이제 30분도 채 안 남았다.

30분만 있으면 오빠가 돌아온다.

이렇게 떨어져 지내는 생활에 많이 적응됐다고 생각했지만, 오빠가 없으면 허전하다는 그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여태껏 오빠와 연애하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평소보다 심장이 두근거렸던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두근거린 적은 없었다.

열차를 타고 수 시간을 달려 돌아온 오빠가 과연 나와 치토세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그런 오빠를 보고 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할까.

꽤 단순하지만 생각할수록 행복한 상상이다.

30분이 이렇게 길었나? 빨리 좀 지나갔으면 싶은데.

평소엔 급류처럼 빨리 흐르는 30분이라는 시간이 꼭 이럴 땐 굼벵이처럼 안 간다.

 

엄마, 엄마!”

 

치토세가 내 오른팔을 붙잡고 흔들며 나를 불렀다.

 

엄마. 얼굴 빨개지셨어요. 어디 아프세요?”

, 아니. 엄마 아무데도 안 아파. 하지만, 얼굴이 빨개질 만도 하지. 후훗...”

 

행복한 상상을 하는 여자라면 누군들 얼굴을 안 붉히랴.

치토세 너도 나중에 엄마처럼 결혼하면 다 절로 알게 될 거야.

 

그나저나 아빠가 지금 어디 쯤 오셨을까? 한 번 전화해볼까?”

! 전화해 봐요!”

 

나는 곧 휴대전화를 꺼내 오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고객님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벨소리 한 번 못 듣고 바로 퇴짜를 맞을 줄은.

들리길 기대했던 오빠의 목소리는 어디 가고 왜 녹음된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까.

 

이상하네? 전화를 꺼놓는 사람이 아닌데...”

한 번 더 걸어보세요.”

그래.”

 

재다이얼 단추를 누르고 다시 오빠의 휴대전화를 향해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녹음된 안내원의 목소리 말고 다른 소리는 아무 것도 안 들렸다.

 

역시 안 돼. 아빠가 전화를 꺼놓으셨나 봐.”

아빠랑 전화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잖니. 그래도 이제 30분만 있으면 아빠 오시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알았지?”

. 알았어요.”

 

치토세의 양 어깨가 아래를 향해 축 쳐졌다.

오빠랑 전화를 못하는 게 기운이 다 빠질 정도로 실망스러운 모양이다.

 

기다리는 내내 지루하고 초조했던 30분이 겨우 지나갔다.

제 시간이 되자 나와 치토세는 열차 승강장에 나갔다.

승강장에는 우리처럼 가족이나 지인을 기다리는 것 같은 사람들, 열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서 있는 사람들, 심지어는 술에 취해 벤치에 누워 잠꼬대를 하는 사람 등 별별 사람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안전선 밖에 서서 열차가 들어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런데 치토세 얘가. 안전선 앞에 나가서 열차가 들어올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다 선로로 떨어지겠다.

 

치토세, 어서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위험해.”

 

그렇게까지 아빠가 보고 싶은 거니? 하여튼...

치토세는 내 말을 듣고 양쪽 뺨을 부풀리며 안전선 밖으로 물러섰다.

이런 치토세의 기다림에 보답하듯,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장소에서부터 열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오신다!”

 

방금 전까지 뾰로통했던 치토세의 표정이 열차가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못지않게 밝아졌다.

열차가 달려오는 소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방향과 반대방향에서도 동시에 들려왔다. 반대편도 열차가 들어오나 보네.

곧이어 애타게 기다리던 신칸센 열차가 정차했다.

열차가 완전히 정차하고 문이 열리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치토세는 마치 앞으로 뛰려는 개구리처럼 두 다리를 오므리며 오빠가 열차에서 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곧장 아빠, 보고 싶었어요! 라고하며 허공으로 뛰어서 품에 안길 생각이겠지.

그나저나,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유심히 지켜봐도 오빠의 모습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열차에서 다 내릴 때까지 계속 지켜봤지만, 내려야 할 사람들을 전부 다 내보낸 열차의 모든 문들은 다시 달릴 때처럼 굳건히 닫혀버렸다.

 

엄마, 아빠가 안 내리셨어요.”

그러게 말이야. 분명 5시 반 열차라고 했는데. 다음 차타고 오시려나?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런 식으로 약속을 번복하는 사람이 아닌데 참 별 일이다.

어쨌든 나와 치토세는 벤치에 앉아 다음 열차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 . .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그 순간이 왔다! 한 달 간의 지방출장을 마치고 코우사카 쿄스케, 무사귀환! 했는데...

마중 나온다고 했으면서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걸까?

열차에서 내려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아야세와 치토세는 보이지 않았다.

여신과 천사 모녀의 열렬한 환영인사(?)를 기대했던 나의 기대감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 꼭 승강장에서 기다리란 법은 없잖아.”

 

나는 애써 마음을 바로 잡으며 곧장 지하출구를 통해 승강장을 나갔다.

혹시나 매표소 앞이나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 역시...

 

아이고...”

 

뜨거운 태양열 때문에 녹아내리는 남북극의 빙하처럼 무참히 부서지고 쪼개졌다.

 

아무리 그래도 집엔 있겠지?”

 

집에마저 없으면 졸지에 방랑자 신세가 될 내 처지를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집 열쇠는 아야세가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치토세와 함께 혹여나 외출이라도 하면 나는 두 사람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동네 이곳저곳을 방황해야만 한다.

한 달 간 고생하고 돌아오는 사람한테 제발 그런 고생은 안 시켰으면 좋으련만...

 

태양이 다음날을 기약하고 사라지며 붉고 어두운 황혼을 만들어내는 늦은 오후.

친숙한 골목길을 돌고 돌아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매일매일 지겨울 정도로 보던 나의 집이 이렇게까지 반가울 줄은.

세상 그 어떤 집보다 훨씬 멋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허공에 대고 귀가 인사를 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현관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돌리니... 묵직한 느낌이 난다.

 

이런 젠장!!!”

 

내가 왜 허공에 대고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

그렇다. 열려있을 거라 확신했던 문이 굳게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왜 제게 이런 고난을 주시나이까!!”

 

나는 평생 믿지도 않던 신에게 마음의 소리를 늘어놓았다.

 

크어어엉!!”

 

? 이 소린 뭐지? 꼭 무슨 짐승이 우는 소리 같은데?

설마 신이라는 작자가 목소리 가지고 장난치는 건가?

 

크르르르...”

 

자세히 들어보니 짐승이 으르렁대는 소리 같다.

이 톤, 이 음색... , 맞다! 전에 아야세가 동물원에서 탈출한 표범이 우리 집 애완동물이 됐다고 얘기했었는데.

 

왜 하필 고생하고 돌아온 이 불쌍한 중생을 맞이해주는 게 사람이 아니고 표범이냐고...”

 

나의 하소연이 끝남과 동시에 건장한 표범 한 마리가 내 앞으로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 하하하하... , 안녕? 네가 그... 레온이냐?”

 

나는 제자리에 서서 벌벌 떨며 녀석에게 아는 척을 했다.

그런데 이 녀석,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동물의 표정은 인간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알기가 어렵다던데,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의 표정은...

 

크어어어엉!!”

 

잠자는 사자, 아니 잠자는 표범의 코털을 건드린 격이 되고 말았다.

이 녀석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양이다. 고성방가 때문에 잠이 깨서 화가 난 건가?

 

, 안 돼. 절대 등을 보이면 안 돼. 녀석이랑 정면으로 마주보고 서서 내가 더 강하다는 걸 증명해야... 가 아니잖아! 표범이랑 싸워서 어떻게 이긴다고!”

 

레온이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있다.

이 나이 먹고 오금이 저릴 줄은... 하긴, 맹수랑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데 누군들 안 그러겠나.

 

그렇지! 냄새 작전!”

 

애완견들은 자신의 주인과 같은 냄새가 나는 사람을 친구로 인정하고 경계를 푼다던데. 난 얘의 주인인 치토세의 아빠니까 분명 그 방법이 통하겠지... 는 무슨!

이 녀석은 개가 아니라 표범이다. 표범이 냄새를 잘 맡는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개한테나 통하는 방법이 표범한테 통할 리가 없잖아!

, 그렇지만... 빨리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이 녀석 당장이라도 날 덮치러 달려들 것만 같다!

에라이 모르겠다, 이판사판이다! 될 대로 되라!

 

, 저기... 난 말이야. 네 주인... 그러니까 치토세 아빠야. 한 번 냄새라도 맡아볼래? 분명 치토세랑 같은 냄새가 날 거야. , 절대로.”

 

나는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벌벌 떨며 왼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 녀석, 내 말을 알아들은 건가?

레온 이 녀석. 내가 왼손을 내밀자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더니, 있는 대로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푼 뒤 드러내고 있던 이빨과 발톱을 집어넣었다.

 

... 살았다... 내 목숨도 참 질기구나.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황천 구경했을 거야.”

 

나는 제자리에 푹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날 주인으로 인정해줘서 고맙다. 난 쿄스케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는 제자리에 몸을 세우고 앉아있는 레온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아야세한테는 머리 쓰다듬는 것도, 간단한 심부름도 못 시키게 할 정도로 까칠하게 대한다던데. 그나마 나를 대할 때는 고분고분한 것 같으니 다행이다.

 

치토세는 대체 이런 녀석을 어떻게 자신한테 복종시킨 걸까? 나 참...”

 

내 딸이지만 정말이지... 혹시 사람이 아닌 신이 아닐까하고 의심될 때가 많다.

그나저나, 뭔가 중요한 일을 잊고 있지 않아?

가장이 오랜만에 돌아오는데 마중 나오기는커녕 한가롭게 외출이나 하고 앉아있고...

아야세, 이 오빠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시련을 주는 거니? ?

 

좋아! 두고 봐! 이번엔 제대로 걱정 좀 하게 만들어주겠어!”

 

평소엔 이런 생각 따위 일절 하지 않던 나지만, 그래도 가장을 마을의 방랑자로 만들다니. 아무리 사랑하는 아야세라도 이럴 땐 밉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은 아카기랑 마나미를 불러서 같이 한 잔 해볼까? 그리고 미카가미랑 다른 동료들도 불러서 2차를 가고! 그렇지! 쿠로네코도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그 녀석이랑 게임이라도 하면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리진 않겠지만 재미는 있겠지!”

 

정 안 되면 나 혼자 포장마차에 전세라도 낼 거다.

한 달 동안 고생하고 참아왔던 여흥의 즐거움을 다 풀어버리는 거야!

 

. . .

 

 

엄마와 나는 승강장의 벤치에 앉아 계속 아빠가 탄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오면 서고, 기차가 가면 앉고. 그걸 반복하길 3.

아무리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아빠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아빠 왜 안 오세요?”

모르겠어. 전화는 계속 불통이고... 오는 열차마다 타고 있지도 않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엄마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엄마의 얼굴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 엄마. 왜 그러세요?”

감히 전화기를 꺼놓고 있다 이거지? 설마... 이대로 동료들이랑 논답시고 막차 타고 밤늦게 들어오려는 건 더더욱 아니겠지? 설마?!”

 

엄마의 두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드리워졌습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평소엔 늘 자상하고 차분하시던 엄마께 이런 면이 있었다니...

지금의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을 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 엄마! 일단 진정하세요!”

진정? 아냐, 치토세. 엄마 화 안 났어. 후후훗...”

 

화 안 나셨다면서 왜 그렇게 음흉한 미소와 웃음을 지으시는 건데요?

 

네 아빠는 너랑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야. , 그래! 바람이 나서 그러는 걸 수도 있지! 자기 주제에 감히 바람이라니... 조금이라도 바람피우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황천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귀에 딱지가 얹히도록 말했었는데! 누가 금붕어 기억력 아니랄까봐 그걸 금세 잊어버렸나보지?”

 

엄마에게서 마치, 만화에서 자주 보던 마왕이 뿜어내는 검은 오로라가 보이는 건 왜일까요?

그리고 엄마의 얼굴표정이 가면 갈수록 음흉해지고 사악해지는 건 또 왜일까요?

 

좋아, 결심했어. 만나기만 해 봐. 집에 오기만 해 봐! 바로 단두대로 보내줄 테니까! 오호호호호호!!”

 

엄마의 음흉하고 괴기스러운 웃음소리가 승강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승강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엄마의 웃음소리를 듣자 벌벌 떨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나도 마음 같아선 피하고 싶었지만, 피했다간 엄마가 무슨 짓을 하실지 몰라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어둡고 음흉한 표정을 쭉 지은 채 내 손을 잡아끌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믿었는데...”

 

? 엄마한테서 들려온 목소리다.

 

끝까지 믿었는데... 오빠가 설마... 오빠가 그럴 리가...”

 

얼굴표정은 여전히 어둡고 무서웠지만, 엄마의 목소리엔 슬픔이 섞여있었습니다.

 

, 엄마...”

믿었는데...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는데...”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엄마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엄마가 우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떻게든, 위로는 해 드려야 할 텐데.

 

엄마, 진정하세요. 아빠는 절대 엄마를 버릴 분이 아니세요. 그리고 아빠가 정말 바람이 나신 건지 아닌 지 확실하지도 않잖아요.”

믿었는데... 믿었는데! 믿었는데!!”

 

지금의 엄마에게 내 목소리 따윈 안중에도 없으신 듯싶었습니다.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며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 당신이 그렇게 나오겠다면 나도 거기에 맞춰주겠어! 집에 한 발짝도 못 들어오게 해줄 테니까 도둑고양이랑 친구 먹고 동네를 실컷 떠돌라고 해! 쿄스케 이 바보! 한 번 해보자! 내가 이기는 지 당신이 이기는 지!”

 

엄마의 화가 도저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대체 어디 계시는 거지?

 

치토세, 빨리 따라와! 네 아빠보다 먼저 집에 가서 문이란 문은 싹 잠가놔야겠어!”

, 엄마! 잠깐만요! 손 아파요!”

 

엄마는 내 오른손을 꽉 쥐어 잡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공원을 지나 우리 집으로 향하는 골목 모퉁이에 다다른 바로 그때.

 

!

 

우악!”

꺄아악!”

 

엄마가 반대방향에서 오던 누군가와 부딪혀 자리에 넘어졌습니다.

 

엄마! 괜찮으세... ?”

아니... 치토세?”

, 아빠?!”

 

내 마음을 따듯하고 포근하게 해주는 자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상에 우리 아빠 밖에 없습니다.

 

어머... , 오빠...?

 

엄마도 곧 아빠를 알아보고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어둡고 무서운 표정을 풀었습니다.

 

아야세...”

오빠...”

 

두 분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것도 잠시.

 

오빠!”

아야세!”

 

멍하게 쳐다본 지 5초도 채 되지 않아, 엄마와 아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격렬하게 끌어안았습니다.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예요? 내가 오빠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나는 뭐 그럼 너 안 보고 싶었겠니? 너야말로 어디 갔다 이제야 나타나는 거야?”

오빠를 마중 나갔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어디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2번 출구에서요.”

에엥?!”

 

아빠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뜨셨습니다.

 

“2번 출구라니... 기다리려면 4번 출구에서 기다리지 왜 거기로 갔어?”

, 뭐예요? 설마, 반대편에 있었던 거예요?”

기차가 가리고 있었는데 너희가 반대편에 있는 지 없는 지 알 리가 없잖아.”

 

두 분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의 얼굴표정은 얼마 안 가 다시 환해졌습니다.

 

됐어요. 그런 얘기는 좀 있다가 해요. 지금은... 다른 게 하고 싶으니까요.”

다른 거? ... 그거 말이구나? 그런데, 치토세도 있는데 괜찮을까?”

 

뭘 하시겠다는 거지?

나는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엄마 아빠의 말씀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아요. 치토세도 나중에 크면 배울 텐데 뭐 어때요?”

하긴 그렇지.”

 

나중에 크면 배운다?

제가 나중에 커서 뭘 배운다는 건데요?

 

정말... 오랜만이라서 감각을 다 잊어버린 게... !”

 

엄마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빠의 입술이 엄마의 입술을 덮쳤습니다.

엄마는 아빠의 입술이 닿자마자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입술이 포개진 감촉을 느긋하게 즐겼습니다.

아빠 또한 엄마와 입술을 포개고 두 눈을 감았습니다.

 

... 이거였구나.”

 

내가 나중에 크면 배운다는 이것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던 키스였습니다.

평소의 나라면 양쪽 뺨을 부풀리며 엄마께 질투가 잔뜩 섞인 시선을 보내는 게 정상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두 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엄마아빠 두 분이 자신들만의 시간을 편히 즐기셨으면 했습니다.

엄마아빠는 해님이 하늘에서 완전히 내려감과 동시에 포개었던 입술을 떼었습니다.

 

오늘은 치토세가 엄마를 방해 안 하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슬픔에 젖어 있었던 엄마의 얼굴표정이 환해졌습니다.

 

그야... 아빠랑 오랜만에 다시 만나시는 거잖아요.”

너는 꼭 오랜만이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치토세 너도 아빠 많이 보고 싶어 했잖아. 엄마 차례는 끝났으니까, 다음은 치토세 차례!”

 

엄마는 날 안아 드시며 아빠의 품으로 옮겨주었습니다.

 

치토세, 그동안 아빠가 집에 없어서 많이 외로웠지? 아빠 어디 먼 데로 안 가. 앞으로 쭉 네 옆에 있을 거야.”

? 정말이세요?”

이젠 더 이상 너하고 엄마랑 멀리 떨어질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해. 알았지?”

 

아빠가 나를 바라보시며 자상한 표정을 지어주셨습니다.

 

, 아빠! 저를 뭐로 보시는 거예요? 제가 누구에요? 아빠 딸이잖아요! 전 아빠랑 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불안해할 만큼 약하지 않아요!”

 

나는 아빠께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빠가 집에 안 계셔서 많이 외로워했던 걸 나도 모르게 부정하려고 했던 겁니다.

하지만 아빠의 자상한 표정엔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럼. 그래야 우리 공주님이지. 아빤 치토세가 아빠가 없어도 잘 할 거라 쭉 믿고 있었어. 그리고 말이야. 늘 아침마다 깨워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꼭 다른 세상에 가 있던 것 같았어. 너 말고 다른 사람이 깨워주니까 도저히 적응이 안 되던 거 있지? 앞으로도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아빠랑 산책하자.”

그야 당연하죠! 새 나라의 착한 어린이... 가 아니고 새 나라의 착한 아빠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요!”

크큭. 역시 치토세는 믿음직하네?”

저는 누구에게나 믿음직해요! 아빠 딸이니까요!”

 

역시 아빠의 자상하신 얼굴표정은 나의 힘의 원천입니다.

엄마 차례는 지나갔으니 이제는 내 차례.

나도 아빠에게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었습니다.

 

아빠. 한 달 동안 고생 많으셨죠? 치토세가 아빠 힘내시라고 드리는 선물이니까 꼭 받아주셔야 해요?”

물론. 치토세가 주는 선물은 뭐든지 좋아.”

아빠, 사랑해요!

 

나는 아빠의 왼쪽 뺨에 가볍게 뽀뽀를 했습니다.

 

하하하! 그래, 바로 이거야. 천사의 키스는 내 힘의 원천이지!”

 

아빠가 해맑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빠. 너무 늦었으니까 이제 그만 집에 가요. 그동안 고생하느라 힘든 거, 푹 쉬어줘야죠.”

그래, 어서 가자. ~! 아야세가 차려주는 식사를 빨리 먹고 싶어라!”

오늘의 메인요리는 장어구이에요. 많이 먹고 힘내서 열심히 일하세요.”

오오! 장어?! 크하하하! 역시 아야세는 여신님이라니까? 그럼 당연하지! 네가 해준 장어구이를 먹으면 온 몸에 호랑이 기운이 쑥쑥 솟아난다고!”

호랑이 기운이 뭐예요. 후훗...”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햇빛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두 분 사이에서 걸어가는 나 또한 그런 두 분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습니다.

 

3일 후의 아침.

우리 집은 언제나 맞는 아침을 맞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가 현관문 앞에 앉아 신발 끈 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빠! 그렇게 꾸물대다간 회사에 지각하시겠어요!”

말하는 게 네 엄마 못지않은데? 크큭, 이 정도면 우리 치토세 시집보내도 되겠어?”

아이, 아빠! 저는 결혼 안 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아빠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예요!”

, . 공주님! 잘 알겠습니다.”

 

아빠는 곧 신발 끈을 다 매고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그럼 아빠 갔다 올게!”

오빠, 잠깐만요!”

 

부엌에서 일하시던 엄마가 나가시려던 아빠를 불러 세웠습니다.

 

? 뭐 잊은 거 없는데?”

깜빡 잊은 거 있거든요? 치토세.”

, 엄마!”

 

아빠가 출근하시기 전에 깜빡 잊은 게 있다면...

 

뜨아아아악~~!

 

바로 엄마와 내가 해주는 모닝 키스입니다.

엄마와 나는 아빠의 양쪽 뺨에 각각 가볍게 뽀뽀를 했습니다.

 

우리야아앗!!! 힘이 솟는다!!! 다 덤벼!!!!”

 

아빠가 호랑이가 부럽지 않을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갔다 올게!”

잘 다녀와요.”

아빠, 다녀오세요!”

 

아빠는 현관문을 넘어 전철역을 향해 골목길을 달려갔습니다.

엄마와 나는 현관에 서서 아빠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강렬한 태양빛이 아빠가 지나간 자리를 비춰주었습니다.

역시 우리 집은 아빠, 엄마, .

그리고 레온이 한 자리에 다 모여 있어야 행복하다니까요.

이 세상에 우리 집만큼 행복한 집이 또 있을까요?

있다고 해도 별로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고요? 행복하니까요!